외환 클럽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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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난영 김지현 기자 =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직을 퇴임한 박주선 국회부의장은 6일 새로 출범한 안철수 대표 체제 지도부에 "지지율이 가파른 상승을 한다는 것은 기대난망"이라고 '긴 호흡'을 강조했다.

박 부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선 때를 기다리고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부의장은 5·9대선 패배 직후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에 취임, 대선 패배로 흩어진 당의 재건 작업은 물론 이른바 '제보조작 파문' 수습까지 도맡았다.

국민의당 최대 위기를 불러온 제보조작 파문은 주도자인 이유미씨를 비롯해 이준서 전 최고위원, 김성호·김인원 전 공명선거추진단 부단장 기소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창당 기반이었던 호남에서 아직까지 민주당에 훨씬 뒤처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박 부의장은 이와 관련, 새로 취임한 안 대표에게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의 지지를 고맙게 생각하고 호남의 지지 이탈을 무섭게 생각해야 한다"며 "호남 하방정치를 하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박 부의장과의 일문일답.

-위기 상황에서 비대위를 이끌었는데 퇴임 소감을 말한다면.
"대선 패배로 허탈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는 당 구성원들을 결속해 당 재건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제보조작 사건이 터졌다. 그야말로 폭풍우를 뚫고 걷다 태풍을 만난 상황이었다. 그래도 당원들과 언론, 많은 분들이 격려해 줘서 대과(大過) 없이 비대위를 마무리하고 성공적으로 전당대회를 마쳐 나름대로 보람을 느낀다."

-비대위원장 인선 과정에 고문단의 반발 등으로 다소 잡음이 있었다.
"비대위원장도 나름대로 대표직을 수행하는, 대표성을 가진 자리다. 정치적 경륜을 쌓는 외환 클럽 99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당이란 사람들의 무리, '떼' 아닌가. 의견이 다 다를 수가 있다. 난 처음부터 비대위원장직을 고사했지만, 그래도 당원으로서 사명과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수락했다."

-비대위 출범 당시 혁신위원회, 대선평가위원회 등을 발족했지만 혁신 활동 등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못했다.
"혁신 작업이 마무리가 안 돼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혁신위가 제공한 안을 통해 전당대회에 필요한 당헌당규 개정 작업은 마무리가 돼 전당대회를 치렀다. 나머지 혁신안은 후임 지도부가 채택 여부를 당헌당규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제가 재임한 기간 동안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건 과도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제보조작 파문이 터졌을 당시 선제적으로 사과를 하고 수습에 매진했다. 그 과정에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
"야당 대표직을 수행하는 사람이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우리가 잘못했다'고 사과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대단히 잘못했다고 제가 발 빠르게 외환 클럽 99 사과했고, 그런 점에서 선택을 잘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사과와 관련해 당내에서 잘한 건가 못한 건가 이견이 좀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아들이 관련된 사건이다. 검찰의 과거 행태에 비춰 과잉, 충성 수사로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부당하게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해 당에서 검찰에 '적극적인 협력을 하고 검찰 수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 대신에 더 이상 선을 넘지 말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 안철수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제보조작 파문이 다시 이슈가 됐었다.
"이 사건을 안 대표는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최대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안 대표라는 비판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정치적 책임과 법률적 책임은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과도하게 안 대표를 비난하거나 금도를 넘지는 말아야 한다.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는 그러진 않았다."

-대선 패배와 제보조작 파문을 수습했지만 당 지지율이 뚜렷하게 반등하진 않았는데.
"대선에서 우리가 패배했기 때문에 우리를 지지한 국민들은 국민의당에 비판과 질책을 줄 수밖에 없다. 지지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또 문재인 정부가 계속해서 국민에게 달콤한 곶감 같은 정책 약속을 하고 있어서 국민들이 최면과 환각에 빠져 있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80%가 넘는 상황에서 누가 어떤 전략과 전술을 펼치더라도 국민의당 지지율을 올리기가 어려운데, 거기에 제보조작 파문까지 터지면서 무능한 정당이 부도덕한 정당으로까지 평가받는 상황이었다."

-안 대표 취임으로 급격하게 지지율이 오를 수 있다고 보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선 때를 기다리고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지지율이 가파른 상승을 한다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그런데다 달콤한 곶감, 포퓰리즘 정책을 정부여당에서 계속 국민들에게 약속하고 있기 때문에 곶감 맛을 기대하는 국민들은 여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호감을 많이 가질 수 있다. 그 호감과 환각에서 빠져나와야 다른 정당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다만 이번 정기국회부터 야당에 의해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정책이 얼마나 허구인지 평가를 하게 되면 지지율은 달라질 것이다."

-안 대표 취임으로 정계개편에 대한 전망도 끊이질 않는데 호남 민심은 어떻다고 보나.
"정계개편이라는 말을 바른정당과의 통합으로 얘기한다면 지금은 시기상조다. 바른정당이나 국민의당이나 우리가 내심 기대하는 만큼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각 당마다 지지하는 기반이 있는데 국민의당은 야권의 핵심 기반인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에서 지지를 확보해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과의 정체성 경쟁에서 이긴 게 아니냐. 호남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의 소임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국회 내에서 협력하고 사안별 연대를 하는 건 가능하지만 지지기반이 다른 상황에서 통합은 거쳐야 할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바른정당과 통합은 시기상조지만 선거연대는 가능성이 있나.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추구하는 방향이 유사하고 동질성이 있기 때문에 선거승리를 위해 선거연대는 가능하다고 본다. 야권의 분열을 통해 여권에 반사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선거전략상으로 봤을 때, 그리고 추구하는 방향에서 동질성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질성의 예를 든다면.
"우리 당도 중도개혁 정당으로서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고 얘기한다. 또 다소 차이나는 부분은 있지만 큰 테두리 내에서 민주당, 자유한국당과 다르다는 점에서 (바른정당은) 우리 당과 매우 유사하고 동질성을 찾을 부분이 많이 있다."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우리 당은 '민주당이 이렇게 가선 안 된다'라는 인식으로 대안 역할을 하겠다고 출범한 정당이다. 민주당의 눈치를 본다거나 민주당과 방향이 같다거나 이렇게 보면 안 된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야당이다. 그렇다고 야당이라고 여당이 하는 모든 일을 사사건건 발목만 잡는 건 구태 야당이다. 민주당이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내용이 야당 입장에서 옳다고 생각되면 어떤 비난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돕고, 바른 일이 아니라면 어떤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돕지 않는다는 분명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안 대표가 최근 중도통합 중심 정당과 함께 '문제해결 중심 정당'을 얘기했는데 맥이 닿는 것 같다.
"그렇다. 시대와 국익을 우선하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면 진보, 보수나 여당, 야당 구별 없이 우리 역할을 해야 한다. 이렇게 여야가 대치되는 상황에서 국민의당이 옳은 생각, 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는 완전히 식물정부가 되고 민주당은 불능정당이 된다."

-지방선거 전까지가 국민의당의 생존에 중요한데, 새 지도부에게 조언을 한다면.
"우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야당의 역할을 해야 한다. 책임 있는 야당으로서 소임과 역할을 염두에 두고 당 운영을 해야 한다. 또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의 지지를 고맙게 생각하고 호남의 지지 이탈을 무섭게 생각해야 한다. 호남 하방정치를 좀 하라고 하고 싶다. 호남에 내려가서 겸손하게 말을 듣고, 당을 홍보하고, 당의 방향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그 분들이 희망을 갖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 출마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데.
"아직 그런 계획을 수립한 바도 없고 관심을 둔 바도 없다.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소임이 있고 국회부의장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는데 광주시장에 출마하면 국회에서의 역할 수행을 못 하게 되는 게 아닌가. 그게 정치인의 자세가 맞나. 또 국민의당 입장에선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데 지방선거에 나가 중앙정치를 도외시하면 되겠나."

-현역 의원이 아닌 안철수 대표가 서울시장, 부산시장에 출마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당에서 필요로 하고 당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자기 이익에, 자기 정치적 입지에 부합하는 것으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 그만큼 역할이 당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과도하게 정치적 의도를 갖고 (안 외환 클럽 99 대표 서울시장, 부산시장 출마를) 주장하는 것은 경계한다."

-비대위원장 시절 햇볕정책 3.0을 거론하고 한반도평화기획단도 발족했다. 햇볕정책 수정 거론이 부담이었을텐데.
"북한이 핵 능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고, 그로 인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오리무중이다. 미국과 한국이 동맹 관계에 있지만 코리아 패싱이 일어나는 외환 클럽 99 상황이다. 원래 햇볕정책이 튼튼한 안보를 전제로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대화, 교류, 협력 이 세 가지를 그대로 실행하는 것에 대해선 수정이 불가피하다. 우리 당이 햇볕정책을 계승한 정당이지만 한 단계 진화시킨 정책이 필요하다. 햇볕정책 3.0을 만드는 건 단시간에 될 수 없다. 한반도평화기획단을 통해 햇볕정책 3.0의 첫 삽을 뜬 것이다."

-햇볕정책 수정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궁극적으로 햇볕정책은 대화를 기반으로 진전이 되면 교류하고 협력한다는 건데, 현 상황에선 대화가 완전히 막혀있는 형국이다. 우리의 대화 제안이 계속 거부되는 상황을 타개하고 오히려 북한이 역으로 진정성 있는 대화를 제안하도록 하는 게 진화된 햇볕정책이다. 특히 대북정책엔 국민 합의, 국제사회와의 공조, 북한의 호응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국제사회에서 모두가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국민도 (북한에 대한 대화 제의에) 동의를 안 해주고 있어 햇볕정책의 진화는 불가피하다."

-일각에선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가 거론되기도 한다.
"동맹국인 미국과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국제사회도 여기에 동의하고 공조한다. (전술핵 재배치론은) 오히려 공론 분열을 일으켜 국제사회의 공조에 손상을 입히는 주장이다. 주장할 가치가 없다."

-이제 국회부의장으로서 여소야대 국회에 집중해야 할 외환 클럽 99 시기다. 향후에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여소야대 상황에서 나름대로 여야를 넘나들며 협치를 위한 역할을 하려 했지만 국회선진화법이 걸림돌이 돼 현실적으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선진화법을 가장 먼저 고쳐야 한다. 거기에 앞장서고 싶다. 또 그동안 내게 불사조, 오뚜기라는 별명이 붙었다. 많은 아픔과 쓰라림이 있었지만 그것도 하나의 정치적 자산이 됐는데, 그 아픔과 쓰라림을 겪는 사람이 더 없도록 하는 나라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송고시간2022-07-11 11:47 요약beta 공유 댓글 글자크기조정 인쇄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룽신(融信中國·Ronshine)이 각각 내년 6월, 12월 만기인 채권의 이자를 지급하지 못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룽신은 홍콩증권거래소 공시를 통해 내년 6월 만기의 금리 8.1% 선순위 채권에 대해 지난달 9일까지 이자 1천279만8천달러(약 166억원)를 지급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내년 12월 만기의 금리 7.35% 선순위 채권에 대해 지난달 15일까지 내야 할 1천507만달러(약 196억원)의 이자를 못 줬다고 확인했다.

기업부채도 급증했다. 중국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기업투자를 통한 성장전략을 펴면서 2007년 94.3%였던 GDP 대비 기업부채가 2010년 117.8%로 상승했으며, 2016년에는 160%에 육박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기업부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철강·석탄 등 전통산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정책이 효과를 보이면서 2018년에는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 149.1%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완화적 정책 기조 등으로 기업부채가 빠르게 늘면서 외환 클럽 99 2020년 160.8%로 다시 상승했다. 2020년 말 전세계 기업부채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육박한다.

3. 중국 외환보유고 강 달러 현상으로 대폭 감소

외환보유고가 가장 많았던 올해 1월말과 비교하면 상황은 보다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무려 1789억 달러나 줄어들었다. 5.5%나 줄어든 수치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7~12월의 6.1% 이래 5년 6개월 만에 감소폭이 가장 컸다. 중국 외환 당국이 위기 의식을 느껴야 할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2022년 6월말 기준으로 중국의 외채 규모는 3조 달러에 가까워지고 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가용 외환보유고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 바로 나온다. 중국의 체제 특성상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낮기는 해도 외환 위기가 도래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홍대 공간의 문화적 의미는 어떻게 변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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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에서 만나” 혹은 “홍대에서 만나”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여기서 홍대 앞은 홍익대학교보다 넓은 지역을 의미하며, 홍대에서 만나자는 말은 홍익대학교에서 만나자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홍대 혹은 홍대 앞은 말의 맥락만큼이나 복합적인 상징성을 띤다. 누군가에게 홍대 공간은 각각 인디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공간, 클럽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예술 문화 공간, 다양한 카페가 있는 공간 혹은 여느 노래 가사처럼 단순히 사람 너무 많은 공간일지 모르겠다. 이 많은 상징성은 짧은 시간에 생성된 것이 아니며, 오랜 기간 사람과 정책과 자본이 어우러져 지층처럼 쌓여온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는 「홍대 공간의 문화적 의미 변화: 공간 이용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문화』, 30(4), 2015)에서 ‘홍대 앞’에 대한 사회적 담론과 연구들을 기초로 해당 공간에 현재와 같은 문화적 의미가 구성된 과정과 그 내용을 이용자들의 기억을 통해 기술하고 있다. 홍대 공간에 대한 연구는 도시계획, 문화연구, 건축, 경영, 도시학 분야 등 다양한 학제에서 연구되어 왔지만 공간 이용자들의 공간 경험과 그 기억에 관해서는 아직 많은 연구들이 축적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문제 의식 하에서 저자는 홍대라는 문화 공간의 특성과 시기에 따른 담론 변화를 탐구하기 위한 기초 자료의 하나로서 이용자의 기억을 수집, 정리하고 있다.

홍대공간 문화가
변해온 과정

홍대 공간의 변화는 우선 1984년 지하철 2호선이 들어서고 홍대입구역 부근이 상업지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홍대 인근은 임대료가 낮았고, 주거 건물 역시 아파트보다는 단독 주택이나 빌라 형태가 많아 옥탑방과 반지하 건물이 많았다. 미대생과 젊은 작가들은 이러한 공간을 작업실로 활용했고, 이 때문에 홍대 인근에서는 ‘108작업실(100만원 보증금 월세 8만원)’, ‘208화실(200만원 보증금 월세 8만원)’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 시기 대중적인 담론 내에서 홍대 앞은 신세대들의 문화 공간으로 간주되었으며, 1994년 성수대교 붕괴에 따라 강북의 종점이 홍대입구역이 되면서 사실상 유흥 공간의 종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편 건전문화의 거리 조성 때문에 신촌 지역 라이브 클럽이 쇠퇴함에 따라 홍대 입구에 라이브 클럽들이 발생하고 융성하게 되었는데, 이때 홍대 지역의 미술 중심 문화가 음악 중심으로 이동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후반의 변화를 추동한 것은 댄스 클럽의 형성이었다. 홍대 인근에 형성된 댄스 클럽의 연원을 선행 연구자 이무용은 미술 작업실에 두고 있다. 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작업, 술, 춤이 어우러지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초기 댄스 클럽은 외환위기 이후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유학생들과 자본의 유입으로 성격이 변화했는데, 일렉트로닉과 테크노 음악 중심의 클럽에서 힙합 음악 클럽으로의 변화도 1990년대 말부터 진행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2000년대 초반을 향락 소비문화 대 인디문화 그리고 정부의 (관광)문화 조성 정책 간의 충돌과 경쟁이 있는 시기라고 분류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홍대 인근의 지대 상승과 상업화 논란은 2000년대 후반 가속화되고, 지역 개발의 속도도 확연히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상업 자본의 홍대 공간 점유에 대한 저항이 부분적으로 지속되었는데, 가장 극적인 사례는 2009년 ‘지구 단위 계획 지역’ 때문에 철거 위기에 처하게 된 ‘두리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홍대 공간 이용자들은 이 사건을 일종의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서 두리반 철거를 막기 위한 문화 투쟁을 시작하였다.

상업 자본으로 인한 공간변화와
소비문화의 문제

저자는 홍대 문화 공간/장소가 어떠한 방식으로 변해왔는지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수집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20대-40대에 이르는 다양한 홍대 문화 경험자/생산자를 선정하여 심층 인터뷰를 수행했다. 인터뷰 대상자의 간략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논문 99쪽

저자는 홍대 이용자들의 기억 속에서 홍대 공간의 의미 변화는 상업자본의 침투, 그리고 소비문화의 양상 변화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소비문화는 현재의 모습과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홍대 출신의 미술가이면서 음악을 하는 B의 경우 댄스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한 20대를 회고하면서 1990년대 말의 댄스 클럽 문화를 단순한 소비 경험이 아닌 것으로 묘사한다. 당시 댄스클럽은 규모도 작고 음악 장르에서도 확실한 분화가 있었으며 궁극적으로는 소규모 취향 공동체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대 이용자들은 상업주의적 자본이 기획한 공간,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는 홍대의 이러한 공동체성을 이루지 못하며, 이런 소비 공간들이 초기 홍대 인디 문화의 주체들이 일군 문화적 의미들을 자본을 통해 흉내 내고 전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간의 문화적 의미를 자본이 훔쳐낸 한 사례라는 것이다.

이처럼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의 홍대 클럽 문화의 참여자들(공연자와 관객)은 일종의 공동체성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회고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당시 문화 생산자들의 기억과 달리 당대 사회적 인식은 클럽 문화를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언론들은 “대학가”와 “퇴폐업소”를 대비하는 구성을 통해 홍대 앞 새롭게 생겨난 소비문화가 대학의 교양과 지성을 해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 맥락에서 클럽 문화를 구성한 인디 밴드들과 주점 및 카페를 연 주체들은 향락 소비문화의 주체였고 대학가를 대학가답지 않게 만드는 존재들로 규정되었다.

관광자에 대한 배척과
문화적 진정성의 의미화

홍대 거주자들은 그들이 막 거주하던 시기에 형성된 홍대 공간을 당대의 상업적이지 않은 순수한 예술가들의 경험을 담은 공간이자 한국의 인디 문화 발전 역사를 담은 것이라고 홍대의 문화적 의미를 정의한다. 그러나 현재의 홍대 문화는 원래 존재했던 소규모 카페 자리를 프랜차이즈 카페가 대체하고, 예술적이고 실험적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판매하던 소규모 공간들이 대형 숍으로 변화됐으며, 이러한 상황은 ‘관광자’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A는 관광자들이 지속적으로 홍대를 찾는 이유를 어떤 공간을 점유하여 “잘나가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획득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관찰하기에, 2002년 이후 홍대 댄스 클럽의 주요 소비자들은 지방이나 서울의 타 지역에서 관광을 온 사람들이다. 홍대 클럽에 갔다 온 경험이 있어야 소위 ‘핫한 사람’으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진짜 경험과 가짜 경험을 구분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이들 방문, 관광자 외에도 주요한 홍대 이용자는 외국인들이다. 홍대 공간은 외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클럽과 바는 외국인들이 찾는 문화적 공간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홍대 거주자들은 이에 대해서 불편함을 호소하였다. 대규모의 단체 관광객은 길을 혼잡하게 하고 클럽과 상점을 붐비게 한다. 거주자들은 스스로를 이러한 관광자들과 구분하며, 자신들은 홍대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생각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은 젠트리파이어의 진정성과 관련하여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주킨Zukin은 젠트리피케이션 초기에 진입한 업종들이 형성해낸 진정성 개념을 언급한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그룹에게 원래 존재하는 일종의 정신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되는 진정성은, 특정한 미학적 감각에 의해 형성되는데, 이것이 특정한 그룹을 배제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바로 외부인을 관광자로 간주하면서 배제하는 것, 스스로에게 젠트리파이어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 저자는 이것이 홍대 거주자들의 미학적 진정성의 일부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백수’와
문화 생산의 문제

저자는 인터뷰에 응한 홍대 거주자들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진정성, 젠트리파이어로서의 자의식은 여전히 문화 생산 공간으로서의 홍대를 강조하는 태도로 드러난다고 본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생산자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절망을 드러내는 말로 ‘문화백수’를 언급한다. 이는 인디 문화 특히 소위 ‘홍대 인디 음악’의 생산과 소비 구조가 변화하면서 생긴 문제로, 문화백수는 현재의 불합리한 음악 산업 외부의 잔여물처럼 존재하게 된다. 홍대 거리에서 공연을 하던 과거의 문화 생산자들의 문화생산 기회는 줄어들었으며, 이제 다양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지만 문화 생산에는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자학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홍대공간의 정체성을 상징했던 클럽. 출처: 리뷰 아카이브 ⓒMerongb10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문화 생산자로서 공간을 점유하는 능력을 강조하는 그룹들이 존재한다고 외환 클럽 99 말한다. E는 홍대 문화 공간의 다양한 이용자 중에서 특히 카페 공간을 일터 삼아 일하는 이들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마포구 인근에 거주하는 E는 의식적으로 상수동의 일대 거리를 일하는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 가는 것,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시간 조직 행위가 해당 카페를 전유하는 방식이 된다는 것이다. 홍대 인근의 카페 문화를 이끈 유명 카페 운영자인 D는 자신의 카페가 홍대의 인디 문화 생산자들에게 일종의 공동체 공간이자 작업 공간, 다시 말해 살롱이라고 자부한다. 저자는 이런 홍대 인디 문화의 특성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언론에 의해서 찬양되었던 바라고 말한다.

[su_quote]이들이 지속적으로 상업 자본에 의한 공간의 변화에 반대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생산 공간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생산적 공간의 의미는 홍대에서 찾기 어렵다. 그래서 이러한 주장들이 자연스럽게 홍대 몰락이라는 향수 담론과 연결된다. D와 E가 말하는, ‘문화백수’가 아닌 문화 생산자, 문화 생산 공간, 협업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홍대는 2000년대 초반에는 가능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창의산업에 종사하는 고소득자, 즉 원초적 의미의 젠트리파이어가 공연장과 바, 그리고 식당이 모두 있는 특정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예술가들과 환담하면서 영감을 주고 받는 일은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신현준, 2015). 소비 공간으로 변모한 홍대는 지리적으로도 분리된 단순 유흥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111쪽)[/su_quote]

‘홍대 몰락’이라는 내러티브 구조와
홍대 향수 담론

저자는 현재의 홍대 문화와 공간에 대한 실망과 한탄은 이러한 맥락에서 향수 담론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홍대 거주자들은 현재의 홍대를 ‘망했다’고 표현하는데 저자는 이러한 ‘홍대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상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본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해당 홍대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이 이야기는 반복/재생산되는 레퍼토리였다는 것이다.

M의 경우 최근 홍대의 상업주의화, 소비문화 공간화에 대한 비판 담론들이 생산적이지 않다고 본다. 이미 수차례 반복되어 온 비판이며 대학로나 삼청동 같은 서울시내 문화 공간에서는 진행되었고 이미 끝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만 홍대 인근 지역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나 단순히 ‘상업화에 대한 비판’과 ‘향수’를 생산한다고 대안이 모색되는 게 아니라는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홍대 향수 담론의 문제는 ‘포스트 홍대앞’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미 홍대입구역을 둘러싼 공간과 문화는 달라져 있기 대문에 여전히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그리고 자생적 문화 공간으로 의미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 변화를 담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화 소비의 여성화’와
홍대 문화의 정체성 변화

홍대 인디 정체성을 1990년대 라이브 클럽과 댄스 클럽문화 그리고 소규모 갤러리에서 찾는 인터뷰 대상자들은 이때의 문화를 남성적이었던 것으로 회고한다. 당시 홍대 문화의 문화적 의미를 형성한 음악적으로 락과 펑크, 힙합, 미술 분야에서 전위 예술과 조각, 공간 설치 미술 같은 것들이 기본적으로 남성적인 특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보다는 남성 소비자가 더 많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L의 진단에 따르면 홍대 문화의 성격에서 여성성이 두드러지게 된 것은 카페 문화의 발전과 관계가 깊다. 2000년대 이전 홍대 인근이 밤의 문화적 성격이었다면 이후에는 카페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낮의 문화이자 여성의 문화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홍대 앞은 여성 소비자들이 낮에 카페를 중심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늦게 열리는 공연 표를 사는 패턴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저자는 밤의 문화와 낮의 문화의 구분은 오히려 여성의 활동 가능한 영역이 외환 클럽 99 외환 클럽 99 외환 클럽 99 여전히 젠더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홍대 문화의 ‘가장 찬란한 시절’(즉 밤의 문화)이 남성 중심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현재 홍대 공간의 소비를 주로 여성과 관련시키면서 그것이 문화를 타락시키거나 혹은 변형시킨다는 것은 생산과 소비를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혐오’의 담론 내에서 보지 않는다고 해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별을 중심으로 문화의 위계를 두는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홍대 문화의 변화 과정에 대한 해석은 남성 주체와 여성 주체 간에 엇갈리는 점이 발견되는데, 저자는 해석의 타당성을 확보하고 문화 현상의 실천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온 문화 소비 패턴과 젠더의 문제를 실증적으로 검증하면서 그 함의를 이론적, 실천적으로 점검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su_quote]지역과 공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것을 만들어가는 것은 누구인지, 그것이 단순하게 자본과 소비에 의해 전유되지 외환 클럽 99 않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와 실험이 시작된 상황에서, 이제 중요한 과제는 서로 다른 ‘세대’와 ‘계급’ 그리고 ‘젠더’라는 고유한 교차성의 문제(박미선, 2014)가 어떻게 이 공간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홍대앞연구네트워크(2015)가 보고서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홍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시공간적 경험은 차이가 있고 그 차이를 이해하고 담론화하는 법을 아직 개발하지 못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적 실천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대표되고 들리게 되는가에 대한 학술적 기록과 질문이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 작품과 영상물 등 실천으로 수행되는 흐름들 외에 학술적 개입 활동이 늘어나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119쪽)[/su_quote]

저자는 본 연구가 인터뷰 대상자의 연령대와 경험이 다양하며 제한적인 사료를 사용했기에 하나의 목소리로 일반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한계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연구는 홍대 공간 이용자들이 스스로 구술한 생산과 소비라는 틀 속에서 문화적 의미를 구성하려는 시도들을 기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포스트 홍대 앞이 시작된 지금 자본과 소비에 전유되지 않은 새로운 장소와 대면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본 논문과 같은 학술적 개입이 더욱 확실한 지표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서울시 문화공간의 담론적 구성: 홍대 공간을 중심으로」
김수아, 2013, 『서울연구원 정책과제연구보고서』 , 1-89.

「장소성 인식 특성이 행동 의도에 미치는 영향 분석」
임하나·강도원·최창규, 2013, 『한국도시설계학회지』, 14(2), 113-126.

韓 외환보유액 6개월째 증가..2454.6억달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외환 클럽 99 6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전인 지난해 9월 외환보유고 이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2일 공개한 '2009년 8월말 외환보유액'에 따르면 지난달 외환보유액은 2454억6000만달러로 전월의 2375억1000만달러보다 79억5000만달러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이로써 지난 3월 증가세로 돌아선 이후 여섯달 동안 무려 439억2000만달러 늘게 됐다.

또 지난해 9월 글로벌 금융시장을 마비시켰던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발생했던 당시에 기록한 2396억7000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금융위기 이후 약 1년여 만에 위기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한은은 외환보유액이 늘어난 것과 관련해 7월과 마찬가지로 운용수익, 외평기금의 외화유동성 공급 자금 만기도래분 회수 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로화와 엔화 등 여타 통화의 강세로 인한 미 달러화 환산액 증가, 국민연금의 통화스왑 만기도래분 상환 6억4000만달러 등도 외환보유고 증가에 보탬이 됐다고 덧붙였다.

문한근 한은 국제국 국제기획팀 차장조사역은 "작년 9월 리먼사태 이후 금융위기 여파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보면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 구성을 살펴보면 유가증권이 2140억9000만달러(87.2%)로 전월과 비교했을 때 비율(87.8%)은 소폭 줄었으나 금액(2086억1000만달러)은 증가하는 등 외환보유액 구성 가운데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예치금 268억4000만달러(10.9%), 특별인출권(SDR) 34억7000만달러(1.4%), IMF포지션 9억8000만달러(0.4%), 금 8000만달러(0.03%) 순으로 집계됐다.

한편, 7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2375억달러로, ▲중국 2조1316억달러 ▲일본 1조227억달러 ▲러시아 4020억달러 ▲대만 3211억달러 ▲인도 2716억달러에 이어 세계 6위 수준을 유지했다.

우리금융 손태승, 'DLF 징계 취소' 2심 승소…연임 '청신호'(종합2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316140] 회장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로 인해 중징계를 받은 데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1심에 이어 2심도 승소했다.

서울고법 행정8-1부(이완희 신종오 신용호 부장판사)는 22일 손 회장이 금융감독원의 문책 경고 등 징계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을 1심과 같이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손 회장은 향후 금융지주 회장 연임이 가능해지고 금융권 취업 제한도 벗어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금감원 징계, 법리 잘못 적용" 1심 판단 유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우리은행 사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민선희 오주현 황윤기 기자 = 손태승 우리금융지주[316140] 회장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로 인해 중징계를 받은 데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1심에 이어 2심도 승소했다.

서울고법 행정8-1부(이완희 신종오 신용호 부장판사)는 22일 손 회장이 금융감독원의 문책 경고 등 징계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을 1심과 같이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DLF 사태의 책임을 물어 금감원이 손 회장에게 내린 문책 경고는 취소된다. 손 회장은 향후 금융지주 회장 연임이 가능해지고 금융권 취업 제한도 벗어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DLF는 금리·환율·신용등급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하는 펀드다. 2019년 하반기 세계적으로 채권금리가 급락하면서 미국·영국·독일 채권금리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DLS와 이에 투자한 DLF에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DLF를 불완전 판매했으며 경영진이 내부통제를 부실하게 했다고 판단해 손 회장에게 문책 경고 처분을 내렸다. 문책 경고 이상 중징계를 받으면 연임과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손 회장은 처분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냈고 지난해 8월 1심에서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처분(징계) 사유 5가지 중 4가지는 금감원이 잘못된 법리를 적용해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해석과 적용을 그르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현행법상 내부 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가 아닌 '준수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금융사나 임직원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법리를 오해한 피고가 허용 범위를 벗어나 처분 사유를 구성했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따라 제재 사유 5건 중 4건을 무효로 보고 "적법한 것으로 인정되는 1가지 사유 한도에서 상응하는 제재를 다시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금감원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금감원 항소를 외환 클럽 99 기각했다.

금융권에서는 손 회장이 2심에서도 승소하면서 연임을 앞두고 법률리스크를 덜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손 회장은 지난 2019년 1월 취임한 뒤 2020년 3월 연임에 성공했고,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금융 입장에서는 이번 판결이 회장 연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손 회장이 DLF 외에도 라임사태로 인해(라임펀드 판매 당시 우리은행장)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받았고, 올해 불거진 직원 횡령사고의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판결이 나온 직후 "이번 행정소송은 제재심 결과에 대한 법리적 확인, 확정 절차로 1심 법원 판결에 이어 2심 법원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우리은행은 본 소송과 관련된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그동안 고객 피해보상과 함께 투자상품 내부통제 강화, 판매절차 개선 등 금융소비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복합위기 상황 등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이 취약차주에 대한 지원 등 국가 경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감독당국과 긴밀한 소통과 정책협조로 금융산업의 신뢰회복과 고객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도 이날 입장을 내고 "2심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하며, 판결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여 향후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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