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분석의 역사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2월 13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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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r5112, flickr

[유비쿼터스]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역사와 세계 각국의 개발 현황 및 기술 분석

● 현재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개발현황
1) 미국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프로젝트
(1) Microsoft사의 ‘이지리빙(Easyliving)’ 프로젝트
(2) HP(Hewlett Packard)사의 ‘쿨타운(Cooltown)’ 프로젝트
(3) UC 버클리의 ‘스마트 먼지(Smart Dust)’ 프로젝트
(4) MIT의 ‘생각하는 사물(Things That Think)’ 프로젝트
(5) MIT의 ‘해비타트(Habitat)’ 프로젝트
(6) MIT 미디어랩의 주요 연구 프로젝트
2) 일본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프로젝트
3) 유럽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프로젝트
(1) ‘스마트 잇(Smart Its)’ 프로젝트
(2) ‘Paper++’ 프로젝트
(3) ‘Grocer’ 프로젝트
(4) ‘2WEAR’ 프로젝트

본문내용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등장배경
컴퓨팅 기술 발전을 배경으로 등장한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인간 생활에 편리함과 쾌적함을 제공한다.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은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사려고 할 때 시장이나 백화점에 직접 나가지 않아도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빠르고 간편하게 제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이는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경계가 더 이상 무의미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가상공간이 네트워크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활공간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단순 주거용이던 건물을 보다 쾌적하고 풍요로운 삶의 공간으로 바꾸는 사업이 각광받고 있다. 이 같은 디지털 홈 사업은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인간 생활에 가져올 놀라운 변화를 읽게 하는 대표적인 예다. 건설회사가 만든 건축물이라는 현실 공간에 IT업체들이 구현하는 가상공간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유비쿼터스 공간이 탄생하고 여기에 디지털 홈 업체들은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다양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각 시대별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역사
우리나라에 소개는 2002년 4월경 전자신문을 통해 소개 되었다. 그러나 그 최초는 89년 마크와이저의 논문에 의해 발표되었다. 84년에는 기술 분석의 역사 일본의 사카무라 겐 박사가 이미 그 개념을 만들어 일본사람들은 자신들이 최초라고 이야기한다. IBM에서는 비슷한 개념이 퍼베이시브 컴퓨팅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막 학문적 체계를 갖추어 나아가고 있으며 모든 IT, BT, NT산업의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보고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올해 4월 16일 최초의 세미나가 있었으며 유비쿼터스 포럼이 창립되었다. 그러나 관심에 비해 자료와 여건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1-2개월 후 상용화되는 스마트 카드, 완벽한 무선 모바일로 자리잡은 인터넷 폰과 센트리노 등이 초기 유비쿼터스를 구현한다. 1993년에“Some Computer Science Problems in Ubiquitous Computing”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Ubiquitous Computing”이라는 제목으로 재 발간되기도 하였다. 1996년에는 그의 논문 “‘The Coming Age of Calm Technology”에서 많은 사람이 한 대의 대형 컴퓨터를 공유하던 메인 프레임 시대에서 1980년대부터 시작한 PC시대, 분산 컴퓨팅을 제공하는 인터넷 시대를 거쳐 개개인이 환경 속에 편재돼 있는 여러 컴퓨터를 사용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1997년에는 ABC방송 Nightline의 컴퓨터 관련 기술을 소개하는 코너에 출연하여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관련된 여러 기술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지금 봐도 참 신기하다 여겨지는 것들이 이미 예전부터 연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리고 1999년에 일본 노무라연구소의 무라카미 데루야스 이사장은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라는 개념으로 마크와이저의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재해석하였고 2000년 12월에는 노무라총합연구소가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라는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에서 특히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금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더욱 확장시킨 개념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라카미 이사장은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를 P2P(Person To Person), P2O(Person To Object), O2O(Object To Object) 즉 세단계로 나누고 O2O 단계에서 비로소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술적 분석(Technical Analysis)의 정의와 역사

투자분석 기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기업의 내재적 가치를 평가하여 투자하는 이른바 기본적 분석(Fundamental Analysis)이라는 방법과 오직 가격과 거래량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기술적 분석(Technical Analysis)이 그것이다.

이들 두 분석 방법의 차이는 기본적 분석가들은 어떤 종목에 투자할 당시 그 투자할 기업의 내재적 가치를 구하여 현재의 시장가격과 비교, 향후 그 종목 가격의 움직임을 예측한다. 즉 현재 투자할 종목의 가격이 내가 분석한 내재가치보다 낮다면 그 종목은 그 이상만큼 상승한다고 믿으며 그 종목에 일정액을 투자하는 방법이다.

물론 그 내재가치를 판단하는 방법은 투자가의 재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회사의 재무제표를 보거나 여러 사회적, 경제적 요인, 이를테면 수출입, 국제수지, 통화량, 경기 등의 전체적인 여건과도 영향이 있을 수 있고 그 기업이 만들어내는 상품의 시장성 등을 그런 영향과 비교하거나 다른 여러 기준을 적용하여 그 기업의 내재적 가치를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분석가들은 어떤 기업에 영향을 주는 무수한 요인들은 내재적 가치를 분석할 당시보다 항상 빠르게 가변 되며 그 가치를 판단하여 내리는 모든 기준들이 모두 예상치에 불과하고 혹 완벽한 분석일지라 해도 그 많은 가치 기준들 중에서는 몇 가지는 과소, 과대평가될 소지가 많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고 지적한다. 정보 통신의 발달로 인해 수없이 많은 정보가 쏟아지며, 이렇게 쏟아지는 하루 동안의 많은 정보가 각각의 정보에 또 다시 반응하고 그 정보에 가장 민감한 시장인 주식시장에 반영된다는 것.

오히려 투자 수익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한다면 오직 시장에서 형성되는 기업 종목의 가격 움직임만이 분석대상이 될 수 있고 그 외의 모든 요인들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가격에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시장가격 움직임만이 미래의 시장 가격을 예측하는데 더 신뢰도가 있다고 한다.

즉 기본적 분석(Fundamental Analysis)은 어떤 현상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는 이론이고 기술적 분석(Technical Analysis)은 어떤 원인에 의존하기보다는 현재 나타나 있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이론 이라 할 수 있다.

2. 기술적 분석 개요

기술적 분석가들은 현재의 시장가격이 모든 기본적 요인들을 이미 반영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가격수준과 그 변동 패턴만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급격하게 변동하는 시장 가격의 예측이 기본적 분석에 거의 무의미하다는 이유보다는 단기적인 가격분석과 시장 진입 여부에 큰 도움이 없다는 한계 를 지적하는 것이다.

기술적 분석가들은 시장에서 거래가 시장 참가자들의 예상 즉, 시장 심리(Market Psychology)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러한 시장심리는 곧 가격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수급만을 예측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기본적인 지표들은 발표되는 순간에 가격에 반영되며 사전에 발표된 지표는 시간적으로 무관하기 때문에 이미 알려진 경제지표나 재료들을 보고 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 이다. 오히려 기본적인 지표들이 발표되는 시점 사이에서는 시장 기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시장 가격은 기대를 반영하면서 추세(Trend)와 패턴(Pattern)을 형성한다. 이러한 패턴에 대한 해석 방법은 차트를 보면서 그 정도를 판단하는 것이 오히려 거래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요인이 된다고 믿는다.

3. 기술적 분석의 역사

기술적 분석이란 거래기법이 최근에 발달 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투자분석의 최초의 형태라고 보고 있다. 그 발달의 시작은 19세기 후반에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기업공시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못했던 초창기에 일반 투자가들은 기업 정보나 수급에 관련한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려웠으며 점진적으로 통신장비가 발달한 후에야 기업 정보에 접할 수 있게 되어 이른바 기본적 분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재무제표나 수급 보고서 등의 시장 정보들을 입수하기 힘들었던 일반 투자가들에게는 가격의 기본적인 정보만 있으면 분석이 가능했던 기술적 분석만이 유일한 분석 기술 분석의 역사 기술 분석의 역사 수단 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분석의 시초로서는 1880년대에 소개된 다우이론(Dow-Theory)에서 시작된다. 이 다우이론의 원형은 Dow-Jones & Co의 설립자인 C. H. Dow가 1880년대에 월 스트리트 저널지에 소개한 일련의 연재물에서 찾을 수 있다. 다우 이론은 초기에는 C. H. Dow가 경기 동향의 예측을 위해 증권 시장의 평균지수를 분석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배경은 결국 개별 주식의 가격 역시 주식시장 전체의 동향에 따라 결정된다는 가정과 함께 시장전체의 동향을 파악하게 되면 개별주식의 움직임을 예측가능 하다고 하는데 기인한 것이다. 또한 다우 이론은 하나의 지수 속에서 그 추세를 파악하고자 의도된 이론이 아니라 두개의 지수를 서로 비교함으로써 분석 가능한 확인과 이탈 현상에 의한 시장 예측 기법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기술적 분석 이론이 추세 추종적(Trend following)인 것들로서 주요 추세를 인식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는 측면에서 오늘날에 있어서도 다우이론의 중요성은 간과될 수 없을 것이다. 이 후 Dow의 이론적 배경 하에서 R. N. Elliott가 소개한 엘리어트 파동이론이 1920년대에 소개되어졌으며 1930년대에는 William D. Gann에 의해서 주식시장의 예측을 위한 독특한 기하각도 이론(Geometric Angles Theory)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Edward R. Dewey를 중심으로 1930~1940년대에 걸쳐 순환 이론(Cycle Theory)이 시장에 소개되어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차트분석 기법이 알려진 것이다.

주식시장의 분석 방법은 크게 기본적 분석방법과 기술적 분석 방법 이 두 가지가 있다. 중요한 사실은 기본적 분석보다 기술적 분석 기법이 먼저 선행되어져 사용되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초기에 미국의 주식시장은 기업 공시제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 그 당시의 모든 금융시장이 마찬가지였겠지만 전화나 통신시설이 전반적으로 미약하여 기업의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어지지 않거나 늦게 시장에 반영되는 일이 허다하였다. 결국 트레이더들은 가격의 시가, 고가, 저가, 종가, 거래량 등의 정보만을 알고 매매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으며 초기에 이러한 가격정보만을 가지고 차트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추세분석의 기본 초석이 되었으며 차트분석의 시작이었던 것 이다.

기술 분석의 역사

빅데이터 기술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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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란 사람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다르기에 모두가 인정할 수 있게 한 마디로 깔끔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빅데이터는 이미 실재하며, 여러 영역에서 이익을 창출해내고 있다. 따라서 그 개념에 대해 개략적으로나마 알아두는 것은 중요하다.
빅데이터는 인간들이 남기는 디지털 데이터 중에서 사용 및 분석이 가능한 모든 것의 총칭이다. 즉, 빅데이터는 수집 및 사용이 가능한 아주 큰 데이터를 가리킨다.
또한 인간이 주변 세계를 데이터화하고, 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은 전례 없이크게 확대되고 있다.
물론, 인간은 매우 오래전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아 왔다. 그러나 오늘날 마이크로칩, 센서,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 데이터 수집 및 분석 능력이 크게 발전하면서 수집한 데이터에 대해 질적으로 다른 활용이 가능해졌다. 빅데이터라는 말이 생긴 배경에는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깔려있다. 이러한 발전 때문에 쇼핑, 음악 감상, 사진 촬영, 전화 통화 등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가 갈수록 디지털의 영역으로 포섭되고 있고, 그 모든 것이 디지털 데이터를 남기는 것이다.
또한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의 종류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의 분석 가능 데이터가 표나 스프레드 시트 등으로 나타낼 수 있는 정형 데이터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사진, 트위터, e메일, 음성 녹음, 센서 데이터 같은 비정형 데이터도 분석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빅데이터는 사회의 거의 전 분야에서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더 나아가 장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데 쓰임으로써 매우 큰 이익을 줄 것이다. 기업에서는 빅데이터를 사용해 고객의 기술 분석의 역사 기술 분석의 역사 취향을 더욱 잘 파악할 수 있어 효율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
또한 질병의 특성을 파악하고 전파 양상을 예측하며 치료법을 알아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경찰에서도 빅데이터를 사용해 범죄자를 체포하고 다음 범행을 예측할 수 있다. 신용카드회사에서도 사기 거래를 탐지할 수 있다. 또한 빅데이터를 이용해 도시 교통을 최적화하는 스마트 도시를 건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빅데이터는 사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일 뿐이다. 앞으로 데이터 수집 및 분석 도구는 더욱 더 저렴해질 것이다. 그로써 빅데이터 수집 및 활용은 현대인의 삶에 갈수록 더 큰 기술 분석의 역사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러한 빅데이터가 걸어온 길,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짚어보기로 하자.

고대~근대 : 데이터의 창세기

(왼쪽과 가운데) 지극히 원시적인 데이터 처리 도구인 엄대와 주판. 하지만 무시하지 말자. 오늘날의 컴퓨터와 스마트폰도 근본적인 기능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른쪽) 허먼 홀러리스가만든 홀러리스 도표 작성 기계.

앞서도 밝혔듯이 빅데이터 기술의 주춧돌은 엄청나게 옛날부터 쌓아져 왔다. 갈수록 커지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예측하려는 발상은 고대부터 이미 존재해 왔고, 그것이 20세기 후반 디지털 혁명을 통해 급가속을 이루었던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데이터, 즉 기록물은 기원전 1만8000년의 엄대다. 엄대란 나무 막대기나 뿔, 뼈 등의 재료에 홈을 파서 거래 내역을 표시하는 것으로, 일종의 고대판 출납장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으로 원시적인 계산을 해서 식량 재고가 얼마나 남았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2400년에는 바빌로니아에서 인류 최초의 계산기인 주판이 발명된다. 그리고 이때를 전후해 도서관도 등장한다.
데이터를 수집, 저장하기 위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린 것이다.
서기 100년경에는 그리스에서 세계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인 안티키테라가 발명되었다. 30개의 청동 톱니바퀴를 사용하는 이 계산기는 천체의 움직임과 올림픽 경기 주기를 계산하기 기술 분석의 역사 위해 발명되었다.
오늘날 컴퓨터의 아득한 원조인 셈이다.
17세기를 즈음해서는 통계학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1663년 영국 런던에서 사회 통계학자인 존 그런트가 현재까지 기록에 남은 것 중 최초의 통계 데이터 분석을 시도했다. 그는 이를 통해 선 페스트의 창궐을 예보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다.
1865년에는 리처드 밀러 데븐스가 자신이 쓴 ‘상업 및 기업 일화 사전’에서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usiness Intelligence, 굳이 해석하자면 기업정보 수집활동)’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그는 은행가 헨리 퍼니스가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조직적으로 기업 관련 정보를 수집 분석한 활동을 가리키는 데 이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상업적 용도로 데이터 분석을 처음 시도한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이후 1881년, 그 전 해인 1880년 미국 통계청이 실시한 인구조사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젊은 엔지니어 허먼 홀러리스가 나섰다. 그가 만든 홀러리스 도표 작성 기계는 천공 카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기술 분석의 역사 기존의 방식으로는 8년이 걸린다고 추산되던 데이터 처리 기간을 불과 3개월로 단축시켰다. 이로써 홀러리스는 자동 계산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가 설립한 타뷸레이팅머신은 이후 우리에게 익숙한 IBM의 전신이 된다.

20세기 : 전자공학의 발전으로 빅데이터 발전의 밑거름이

(왼쪽) IBM이 개발한 슈박스. 비정형 데이터인 음성을 디지털 데이터화하는 1960년대의 최첨단 기기였다.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늘 사용하는 월드 와이드 웹을 발명한 영국의 팀 버너스 리. (오른쪽) 전통적인 데이터 저장 매체인 종이(책)와 디지털 데이터 저장매체인 CD. 한 사람이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배우는 내용을 다 합쳐봐야 CD 한 장에 다 들어간다. 디지털 매체의 엄청난 힘을 실감할 수 있다.

1928년에는 독일의 공학자 프리츠 플로이머가 자기 테이프를 사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을 발명해 냈다. 오늘날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도 자기를 이용해 정보를 저장한다는 점은 플로이머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1937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사상 최초의 대규모 데이터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그해 사회보장법이 발효되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노동자 2600만 명과 사용자 300만 명의 분담금 납부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한 천공카드 판독 기계를 제작한 회사 역시 IBM이었다.
1943년, 영국은 독일의 로렌츠 암호를 풀기 위해 최초의 데이터 연산 장치이자 디지털 컴퓨터인 콜로서스를 만들어 낸다.
콜로서스는 분당 5000자의 속도로 암호문을 읽은 다음, 이 속에서 암호 해독의 실마리인 문자 나열 패턴을 발견해 냈다. 과거에는 몇 주나 걸렸던 암호 해독 작업이 콜로서스 덕분에 불과 몇 시간 만에 끝나게 되었다.
1944년에는 미국 웨슬리언대 도서관 사서인 프리몬트 라이더가 ‘학자와 연구 도서관의 미래’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정보량의 폭발적인 증대를 예견했다. 학계에서 생산해 내는 논문과 대중 서적을 모두 보관하려면 미국의 도서관 규모는 16년마다 두 배로 늘어나야 한다고 본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보면 이 정도도 너무 완만하게 잡은 감이 있지만 말이다.
1962년에는 IBM 엔지니어인 윌리엄 C 더쉬가 세계박람회에 ‘슈박스’를 출품해 화제를 모았다. 슈박스는 사람이 영어로 말하는 숫자와 16개 단어를 디지털 정보로 바꿀 수 있는 음성 인식 기기 중 하나였다.
이는 음성 데이터와 같은 비정형 데이터 전산화의 첫걸음이었다.
또한 1960년대부터는 거대 데이터센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965년 미국 정부는 소득신고서 7억6500만 건과 1억7500만 명분의 지문을 자기 컴퓨터 테이프로 저장할 수 있는 최초의 단일 데이터센터 건설을 결정했다. 이 프로젝트는 ‘빅브라더’의 출현을 우려한 반발로 결국 무산되었지만, 거대 전자 데이터 저장소 시대의 효시로 여겨지고 있다.
1970년에는 IBM의 수학자인 에드가 F 코드가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체계를 제시했다. 이는 오늘날 사용되는 여러 데이터 서비스에서도 정보를 체계적으로 저장해 누구라도 찾기 쉽게 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 체계가 나오기 전에는 전문가가 있어야 컴퓨터의 메모리 뱅크 속 데이터를 찾아낼 수 있었다.
1976년에는 자재소요계획(Material Requirements Planning : MRP) 시스템이 기업계에 널리 보급되었다. 이는 컴퓨터가 기업의 일상업무 처리 신속화와 효율화를 위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첫 사례 중 하나였다.
1989년은 빅데이터의 역사에서 여러 모로 뜻 깊은 기술 분석의 역사 한 해였다. 빅데이터라는 말이 오늘날의 뜻대로 처음으로 쓰인 해이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에릭 라슨은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받는 정크메일을 빅데이터 때문으로 보았다.
그는 “빅데이터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비자의 이익을 지킨다고 생각하겠지만, 빅데이터는 실제로는 그와는 다른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이미 잘 알려져 있던 개념인 ‘비즈니스 인텔리전스’는 상업 및 운영성과 분석용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의 보급으로 더 널리 알려졌고, 그 결과 중 하나가 오늘날의 인터넷 맞춤형 광고의 선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정크메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에는 영국의 컴퓨터공학자 팀 버너스 리가 월드 와이드 웹, 즉 전세계를 연결하는 통신망을 발명해 냈다.
그는 이 월드 와이드 웹에서 하이퍼 텍스트 시스템을 통해 다른 서버에 있는 정보를 어디서나 손쉽게 가져올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당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것을 만들어 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버너스 리가 월드 와이드 웹의 발명을 발표한 것은 1991년의 일이었다. 그는 이제 어디에 있는 누구나 상호 연결된 데이터망에 접속해 원하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과 월드 와이드 웹의 등장 그리고 더 나아가 디지털 저장 매체의 가격 하락은 빅데이터의 역사에서 큰 혁명이었다. 후일 R J T 모리스와 B T 트루스코스키는‘저장 체계의 혁명’(원제 The Evolution of Storage Systems, 2003년)이라는 책에서 1996년을 가리켜 디지털 저장 매체의 비용 효율성이 종이 매체를 능가한 첫 해라고 말했다. 이 말이 갖는 의미는 엄청나다. 종이 매체는 단위면적당 데이터 저장량이 일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는 기술 발전에 따라 단위면적당 데이터 저장량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종이는 경년변화에도 약하다. 종이의 수명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산성지의 경우 채 100년이 안 된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의 수명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반영구적이다. 그러한 디지털 매체가 종이보다 싸졌다는 것은 디지털 데이터의 폭발을 의미한다. 이듬해인 1997년 마이클 레스크는 당시 세계에는 약 1만2000페타바이트 정도의 정보가 있으며, 이 정보는 매년 10배로 늘어나고 있다고 추론했다.

21세기 : 본격적인 빅데이터 시대의 시작

스마트폰은 빅데이터 초창기인 오늘날 사용자를 인터넷을 통해 빅데이터와 연결해 주는 단말기인 동시에 그 자체로 데이터를 만들고 수집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2005년, 웹2.0 시대가 개막됐다. 이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사용자에 의해 제작·공급되는 웹을 의미한다. 이는 기존의 HTML식 웹 페이지를 SQL 기반 백엔드 데이터베이스에 결합함으로써 가능했다. 그 전 해인 2004년부터 서비스를 개시한 페이스북에는 이미 당시 550만 명이 가입해 이런저런 데이터를 올려 공유하고 있었다.
이 해에는 빅데이터 세트 저장 및 분석 전용 오픈소스 프레임워크인 ‘하둡’도 만들어졌다. 하둡은 매우 유연해 음성, 동영상, 텍스트 등의 비정형 데이터도 관리할 수 있었다. 이로써 세계는 진정한 빅데이터 시대를 맞게 되었다.
2008년 전 세계의 서버가 매일 처리하는 데이터의 양은 9조5700억 기가바이트에 이르렀다. 이는 세계 인구 1인당 12기가 바이트 꼴이며, 한 해로는 14.7엑사바이트에 달한다. 2009년 종업원 1000명 이상 미국 기업의 평균 데이터 보유량은 200테라바이트 이상이 되었다. 같은 해 인도는 12억 인구 전원의 홍채, 지문, 사진 데이터를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생체 인증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이다.
2010년에는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가 학회에서 “인류가 문명을 이룬 후 2003년까지 생산했던 만큼의 데이터가 요즘은 불과 2일 만에 만들어지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매킨지 보고서에서 2018년이 되면 미국은 데이터 과학자 14만~19만 명이 모자라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빅데이터의 진정한 힘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사생활, 보안, 지식재산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4년 모바일 기기의 대량 보급으로 디지털 데이터 접속에 PC보다 모바일 기기가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GE와 액센츄어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기업 임원 중 88%가 빅데이터 분석에 최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다고 한다. 빅데이터는 이제 더 이상 망상도 헛소리도 아니다. 실존하며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현상이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1926년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는 ‘콜리어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무선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전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두뇌로 변모할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것은 생생하고 율동적인 전체를 이루는 부분들이 될 것입니다. 이 두뇌 속에서 길을 찾는 데 필요한 기기는 지금 사용하는 전화기만큼이나 단순하고, 조끼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은 것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을 오늘날 우리의 정보화된 생활과 비교해보면 테슬라의 선구안에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수 없다. 테슬라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에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스마트폰의 존재를 예견했던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빅데이터는 결코 완전히 새롭거나 동떨어진 뭔가가 아니다. 인류 문명이 생겨나면서부터 이루어졌던 데이터 수집 및 분석 행위가 그 규모와 속도, 다양성 면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발전을 이룬 것일 뿐이다. 데이터 취급 방법의 오랜 노하우 축적과 진화는 물론, 데이터 저장, 처리, 인터넷 등의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본격화된 빅데이터 시대는 기업 경영과 사회 운영을 앞으로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동시에 또 여러 가지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질 초석도 깔아 놓을 것이다.
빅데이터가 열어 놓을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될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기술적 분석'의 창시자, 찰스 다우가 본 주가의 흐름
(2017년 04월 기사)

(The Price Movement)

벌써 2017년 1분기가 끝나고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는 4월입니다. 올 한해 꼭 이루겠다고 다짐했던 목표들은 잘 지켜나가고 계신가요? 이 시점에서 잠시 멈춰서 각자의 목표를 날카롭게 재정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지나간 시간에 아쉬워하기보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더 멋지게 보낼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간에는 주가 흐름에 대해 최초로 기술적 분석을 시도해 미국 주식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전설적인 인물, '찰스 다우'에 대해 소개해보려 합니다.

기술적 분석의 시대를 연 찰스 다우

흔히 '뉴욕 타임즈', '뉴욕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을 미국 3대 신문으로 꼽는데요. 특히 '월스트리트 저널'은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와 더불어 세계 경제지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때문에 가수 김장훈 씨가 독도 광고를 뉴욕포스트와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죠.

찰스 다우 흑백 사진

'월스트리트저널'의 창간자는 바로 찰스 다우입니다. '다우'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 중 하나인데요. 실제로 우리가 보통 미국증시를 볼 때 활용하는 지표 중 하나인 '다우존스 산업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 역시 그가 창안한 개념이랍니다.

하지만 그의 유명세를 알린 것은 후세에 그가 의 정립자로 알려져 기술적 분석가들의 시초로 불리면서부터입니다.

찰스 다우, 월스트리트를 향해 달려가다

찰스 다우는 1851년 미국 코디니켓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6살 때 아버지가 기술 분석의 역사 돌아가시는 바람에 생계가 어려웠던 그는 각종 직업을 전전하다가 18세에 신문사에 입사해 기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그가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거친 직업의 수만 해도 무려 20개에 이르렀다고 하는데요. 삶은 어려웠지만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중퇴자임에도 불구하고 기자에 합격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그는 스프링필드에서 발행되는 '리퍼블리컨(Republican)'의 저명한 편집자 새뮤얼 바울스 밑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기자로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특파원으로 금광과 은광을 누비며 현지 탐사보도를 수행하고 철도회사와 증기선 업체, 범선업자 등과의 갈등을 소개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구축한 찰스 다우는 어느 날, 뉴욕으로 특파원 업무 파견을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뉴욕에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뉴욕 증권거래소 사진

당시는 뉴욕 증권거래소가 막 태동하던 시기였는데요. 그는 뉴욕의 일상을 취재하기보다 증권의 분석 및 시세 연구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그는 증권을 다루는 전문지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퇴사합니다. 그리고 금융인 찰스 밀포드, 친구 에드워드 존스와 함께 1882년 회사를 설립합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다우존스'라는 이름은 위 '찰스 다우'와 '에드워드 존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랍니다.

다우 이론 대공황을 예측하다

처음은 늘 미약하지요. 셋이 잡지를 만들던 장소는 겨우 거래소 근처 음료수 가게 지하층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뉴욕 최초의 주식정보지 '커스토머스 애프터눈 레터(The Customer Afternoon letter)'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 후 심층보도기사에 다우의 인기까지 겹쳐 무려 2년 만에 인쇄기를 살 수 있는 돈을 가져다 준 이 기술 분석의 역사 잡지는 1889년 월스트리트 저널로 이름을 개명,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1889년 월스트리트 저널 사진

찰스 다우는 너무 많고 복잡한 각 개별 기업의 주가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위해 미국 우량종목만을 모아 지표를 만들어 소개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우존스 산업지수의 시작입니다. 이 때 그는 12개 우량기업의 개별종목 기술 분석의 역사 주가를 단순 합산해 평균을 도출했습니다. 이렇게 주가를 표현하는 방식을 '다우식'이라 합니다.

다우 존스 간판 사진

ⓒ star5112, flickr

뿐만 아니라, 찰스 다우는 칼럼리스트로서 자신의 주가 분석과 전망을 신문에 실어 자신의 이론을 전파했는데요. 이것은 훗날 다우가 사망한 뒤 월스트리트 저널의 편집장이 된 친우 월리엄 해밀턴 등에게 계승되면서 다우 이론(Dow Theory)이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실제로 다우 이론은 1929년 대공황을 정확히 예측해 지금까지 기술적 분석의 전범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시장에는 흐름이 있다

찰스 다우는 칼럼리스트, 분석가를 자처했기에 비록 실제 이론을 세우지는 못했어도 그의 생각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기고한 칼럼에 충분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글에 따르면, 기업의 주가는 단기적으로는 큰 변동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가치에 수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소, 그는 일반 대중들과 주식 투자가들의 시각을 면밀히 구분하고 그들의 행태를 분석했는데요. 대세상승과 대세하락의 기간을 명확히 구분하고, 기업과 산업이 실적 바닥에서 탈출하면 대중들의 투자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 주가가 상승하고 결국 이것이 인플레이션과 거품을 유발해 대세하락을 가져온다는 것을 예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투자가들이 대중과 반대의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주식을 매매, 이익을 거둔다고 보았습니다. 의외로 기술적 분석가로 알려져 있지만 찰스 다우 역시 기업의 가치에 걸맞은 매매를 할 것을 촉구했답니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가치를 읽고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식견을 밝힌 것이죠. 미국 주식 시장에 큰 영향을 준 찰스 다우는 5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오늘도 미국 증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 주식 투자 ] 기술적 분석으로 주식 투자 하는 방법 알아보기

기술적 분석이라는 것은 가격, 거래량을 바탕으로 금융 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즉 기술적 분석은 차트를 분석하고 투자하는 방법입니다.

시장은 비효율적이며, 역사는 되풀이되고, 가격은 추세를 이루며 움직인다는 전제를 두고 하는 분석입니다.

기술적 분석의 역사를 보면 18세기 일본에는 이미 쌀 선물시장이 발달했습니다. 상인이었던 '혼마 무네히사'는 오사카 쌀시장에서 쌀가격예측을 위해 적삼병같은 패턴분석을 이용하였습니다. 현대 한국과 일본등에서 널리 쓰이는 봉차트(Japanese Candlestick)도 그가 개발한 것입니다. 19세기에는 미국의 '찰스 다우'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다우이론이라 불리는 기법을 논설했고, 20세기에는 엘리어트가 파동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갠은 각도 연구, 그랜빌은 이동평균선매매법과 거래량지표를 발전시켰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목균형표같은 기법이 발전했습니다. 20세기 후반에는 와일더가 ATR, 파라볼릭, RSI, ADX같은 지표를 발표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분석을 하게 됐을 때 돈을 잃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확증편향이 나타납니다. 5분봉에선 매수신호가 나타나고 30분봉에선 매도신호가 나타나는데 그냥 들어가고, 5분봉에서 매수신호가 나타났으니 무조건 오를 거라고 생각하고 손실제한주문도 걸지 않습니다. 다른 지표들이 매도신호를 보내도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고, 지표를 왜곡해서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면 고점을 찍고 하락추세를 타는 주식을 쌍고점을 찍을거라고 생각하고 매수합니다.

두 번째로 자만합니다. 기술적분석으로 몇번 벌고 나서 자신이 기술적분석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부화뇌동매매법을 하면서 돈을 다 날려먹고서 기술적분석의 탓을 하게 됩니다.

세 번째로 기본이 안 되어 있습니다. 주식을 사기 전엔 그 주식을 얼마에 살 것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얼마에 팔고 얼마에 손실제한을 걸어놓을 것인지 전부 결정한 뒤 매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지켜보던 주식이 갑자기 상승세가 나타나면서 상승 다이버전스가 나타나면서 지표들이 매수신호를 보내면 뒤도 안돌아보고 매수합니다.

결론적으로 기술적 분석을 통해 주식 투자를 하게 되면 확신이 들지 않기 기술 분석의 역사 때문에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 분석을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만의 방식을 정해 놓고 그 방식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멘탈이 정말 강해야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잘 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기술적 분석은 근거가 빈약하여 논쟁거리가 되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술적 분석을 포기하면 무엇으로 거래할 것인가? 단지 그 기업이 계속된 흑자를 보고 있다고 해서 프리미엄이 한무더기 붙은 비싼 가격에 그 주식을 매수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기본적 분석과 기술적 분석은 병행되어야 합니다. 기본적 분석은 그 주식을 매수할지 안할지 결정해주고, 기술적 분석은 기본적분석으로 걸러낸 주식을 언제, 얼마에, 몇주나 매수할 것인지 판단하는 보조지표가 됩니다.

하지만 이런 분석법을 100%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기본적 분석이든, 기술적 분석이든 확실한 것은 돈을 번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적어도 어느 한쪽이 확실하게 정답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그 방법을 택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성공하는 경향은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둘 중 어느 쪽도 그러한 것은 없으며 소수만이 성공합니다.

따라서 어느 분석이 압도적으로 정답이라기보다는 어느 분석을 선택하든 그 사람의 수준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즉 벌사람은 어떻게든 벌고 잃는 사람은 어떻게든 잃는다는 소리입니다. 애초에 투자에 있어서 모든 방법은 100%들어맞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 수익을 낼 수 있는가이며, 그것은 막연한 이미지와 편견으로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기본적 분석에 많은 비중을 두고 투자하고 있으며 기술적 분석에 대해서는 공부를 많이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고점에서 매수를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럴 때 마다 혼자서 괜찮다고 장기투자로 보면 비싸게 산게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외칩니다. 앞으로 기술적 분석도 하여 고점에서 사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더욱 공부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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